2017. 08. 11 금요일


예술의 전당에서 하고 있는 라이프 사진전을 다녀왔다. 사실 크게 뭘 배워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간 건 아니었는데 전시를 보면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고, 희노애락이 어우러진 이 세상은 참 사랑스럽다고 느꼈고, 결과적으로 기분이 좋아졌다. 오글오글하지만 진짜 그랬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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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실, 사진이 그렇게까지 그 당시의 메세지를 강렬한 느낌으로 전해줄 수 있는 매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. 매 사진 한 장 한 장을 볼 때마다 나는 왜 그 시대에 태어나 당시 라이프 지를 보지 못했을까 아쉬울 정도였다. 모르고 보면 그냥 힙하게 잘 찍은 사진 한 장이지만 사건과 배경과 인물들의 비하인드가 곁들어지면 그 사진은 하나의 훌륭한 작품이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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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장 인상적이었고, 발이 땅에 붙어 하염없이 보고 있었던 사진들이 두어 개 있었다. 그 중 하나가 <악의 평범성>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던 아돌프 아이히만 수감 사진이다. 자신은 그저 성실하게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라 주장했던 이들에게 내려졌던 유죄 판결은 꽤 유명하다. 인간은 생각을 할 수 있고, 생각하지 않은 죄는 중죄였다. 시대와 환경에 순응하거나 굴복하지 않으려고, 양심을 지키려고 하는 행위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고 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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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시장 들어간 초입부터 흘러나오는 음악들이 너무나도 내 취향이었다. 40-50년대 팝이 내 취향이었을 줄이야ㅋㅋ. 특히 Band of Gold와 Manhattan은 플레이리스트가 돌아 다시 나올 때마다 귀기울여 들었다. 흑백사진들과 비비드한 컬러의 배경, 어두운 듯 밝은 주광색 조명이랑 환상의 궁합이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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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3,000원을 내고 봤지만 또 보러가고 싶다. 감상에 방해가 될까봐 도슨트도 다 지나보내고 천천히 봤는데, 이번에는 도슨트를 따라가보거나 해설기를 대여하거나. 특히 도슨트는 전시된 사진 몇 개를 묶어서 설명해주는게 참 좋긴 좋았는데, 마이크를 쓰다 보니까 안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한 소음이었다. 정해진 시간대에 도는 거고, 그 시간대에 모르고 들어간 내가 아쉬울 뿐이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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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날 비가 왔으면 참 좋았을 거다. 눅눅하긴 해도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는 생각 정리에 아주 좋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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관람을 마치고 나와서는 커피 한 잔을 하거나 샵을 둘러보거나 하는 게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!

이번에는 사진전이라서 그런가, 플라스틱 조립으로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로모카메라가 있었다. 가격이 6만 8천원이었나 9만 6천원이었나. 렌즈 종류도 여럿 있었고, 생각보다 그럴 듯한 모양새인데다가 가격도 저렴... 저렴?해서 순간적으로 혹했다. 실제로 모형이 아니라 필름 돌릴 수 있는 물건이라 더. 디자인도 예뻤다. 그리고 내가 쓰는 카메라랑 렌즈 직경이 같아!! 35mm!! 그러나, 하지만, 나는 이미 카메라가 1대 있으니까...... 사실 렌즈는 호환사이즈인 걸 보자마자 눈이 뒤집혔었는데, 패키지박스 겉면에 이 카메라에 호환되는 렌즈라고 적혀있길래ㅎ. 아마 이 조립식 카메라에만 쓸 수 있다는 의미이지 싶다. 또 보러 간다고 치면 그땐 홀린 듯이 카메라 박스를 손에 들고 있을 수도 있겠다. 독특하게 생겼던 뷰파인더가 자꾸만 생각난다.

보통 인상깊었던 작품이 프린트된 엽서 한 장 정도는 사는 편인데, 어떻게 된 게 내가 마음에 들어한 작품들은 항상 엽서로는 발견하기가 어렵다. 저번 밀레전도 그랬고, 이번에도 그랬다. 내 취향... 마이너야?ㅠㅠ 결국 이번에도 엽서 한 장 못 사고 그냥 구경만 하고 나왔다.


여운이 오래 남는 전시였다. 또 보러 가고 싶다. 또 보러 갈래.